축구 연재/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

지안루이지 부폰 :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

Goalie 2019. 4. 24. 02:05

 

 

 

이름 : 지안루이지 부폰 (Gianluigi Buffon)

국적 : 이탈리아 

출생지 / 생년월일 :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카라라 / 1978년 1월 28일

키 : 192 cm

 

현존하는 최고의 골키퍼들 중 한 명이자,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디노 조프와 함께 늘 거론되는 골키퍼계의 살아있는 전설. 월드컵 5회 연속 출전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과 함께 42회의 개인 수상으로 골키퍼로써는 역대 최다 기록 또한 보유 중인 골키퍼이다. IFFHS 선정 21세기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는 등, 레프 야신 다음 가는 최고의 골키퍼가 누구냐는 질문에 빠짐 없이 거론되는 축구사에 길이 남을 수문장 중 한 명임이 분명하다. 

 

 

# 파르마 시절

 

 

파르마 시절 지안루이지 부폰

 

 

 13세의 나이로 파르마 유소년 구단에 합류했던 지안루이지 부폰은 본래 필드 플레이어로 뛰던 중 골키퍼로 전향했다. 당시 자신의 우상과도 같았던 토마스 은코노(카메룬의 전설적인 골키퍼)의 영향으로 이러한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골키퍼라는 포지션에 빠르게 적응했고, 2주만에 유소년 팀 주전 골리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지안루이지 부폰은 팀 내에서의 실력을 인정 받고 1995년, 17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퍼스트 팀에 합류했는데, 당시 네비오 스칼라 감독이 이끌었던 파르마에서 리그 데뷔 경기도 가지게 되었다. 부폰의 데뷔전 상대는 놀랍게도 파비오 카펠로 감독 하에 리그를 제패했던 AC 밀란이었지만, 데뷔전의 기록은 클린시트로 마무리되었다(0-0 무승부). 부폰은 이 경기에서 로베르토 바조(1993년 발롱도르 수상자)와 조지 웨아(1995년 발롱도르 수상자)를 상대로 눈부신 선방 능력을 보여줬었다. 파르마는 부폰이 데뷔했던 시즌에 리그를 6위로 끝마치며 UEFA컵 진출 자격을 따내었고, 지안루이지 부폰의 활약상은 더 큰 무대로 향할 수 있었다. 

 1996-1997 시즌 완전히 파르마의 주전 골키퍼로 자리 잡은 부폰은 리그에서만 27경기에 나와 17실점만을 허용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그의 이러한 활약상은 이탈리아 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파르마는 유벤투스에 이어 리그 2위로 시즌을 마무리할 정도로 뛰어난 시즌을 보냈다. 또 이 시즌에는 18세의 나이로 UEFA컵 무대에도 모습을 비추기도 했다. 이 해, 부폰은 국가대표 성인 팀 무대에서 데뷔했었다. 1997년 10월에 있었던 러시아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첫 데뷔전을 가졌고, 이 기록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태리 역사상 가장 어린 골키퍼로 남았었다(후에 지안루이지 돈나룸마가 등장하며 이 기록은 깨졌다). 그 다음 시즌은 코파 이탈리아 준결승에도 올랐었고, 부폰은 챔피언스 리그 데뷔 무대도 가졌었다. 2차 예선 경기에서 폴란드 축구 클럽 비제프 우치를 상대했고, 부폰의 나이는 겨우 열아홉에 불과했으며, 이후 10월에 있었던 갈라타사라이와의 경기에서도 주전으로 나와 모두 승리로 장식하면서 아름답게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파르마는 도르트문트의 뒤를 이어 조 2위를 기록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1997-1998 시즌의 부폰은 '슈퍼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발롱도르 수상자인 호나우두의 패널티킥을 막아내면서 생긴 별명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네번째 시즌, 그는 파르마에서 첫 유럽대항전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파르마는 UEFA컵 결승 경기에서 프랑스의 축구 클럽 마르세유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었고, 지안루이지 부폰은 무려 클린시트로 이 중대한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 시즌의 파르마는 코파 이탈리아마저 접수했고, 당연히 그 중심에는 부폰이 존재했었다. 지안루이지 부폰의 뛰어난 활약상은 모두가 인정했고, 그 결과 23세 이하의 유럽 선수들 중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브라보 상과 세리에 A 최우수 골키퍼상을 수상하며 승승장구했다. 또한, 그의 이러한 활약상들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에도 승선했는데, 다만 그의 첫 월드컵에서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었다.

 그 다음 시즌 파르마는 수페르 코파 이탈리아에서 AC 밀란을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이어진 2000-2001 시즌에는 부폰의 활약상 아래 파르마가 다시 한 번 코파 이탈리아 결승으로 향했지만, 이번에는 피오렌티나에게 패하며 아쉬운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폰의 활약상은 다시 한 번 세리에 A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IFFHS 선정 올해의 골키퍼 3위에 오르는 등 유럽 축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골키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당시 부폰은 2002 한일 월드컵 예선전에서 프란체스코 톨도에 밀려 국가대표 팀에서는 벤치 신세였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체제 하에 연속 선발 출장하며 이탈리아 국가대표 팀에서마저 최고의 골키퍼로 자리 잡았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그는 당시 골키퍼로써는 최고 이적료였던 약 5000만 유로의 가격으로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 살아있는 전설

 

 

 

 

유벤투스의 영원한 전설로

 

 지안루이지 부폰은 당대 골키퍼 최고 이적료로 팀에 합류했고(후에 말한 바로는, 바르셀로나나 로마로 향할 수도 있었다고.), 풀럼으로 떠난 에드윈 반 데 사르를 대신하여 곧 바로 유벤투스 주전 골리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부폰의 5000만 유로라는 이적료는 2016년에 곤잘로 이과인이 합류하기 전까지 깨지지 않았던 유벤투스 사상 최고 이적료 지출이었다. 

 부폰의 유벤투스 첫 데뷔 경기는 2001년 8월 26일 리그 개막전. 상대는 베네치아 FC였고, 그의 첫 경기는 무려 4-0의 대승과 함께 클린시트로 마무리되었다. 그 해 9월 18일에는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고 첫 챔피언스 리그 무대도 밟게 되었다. 지안루이지 부폰의 유벤투스 입단 첫 시즌은 성공적이었다. 리그에서만 34경기를 출장했던 그는 고작 22실점만을 기록했고, 세리에 A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올렸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부진했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으나(조별 예선 탈락), 그래도 첫 시즌부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는 부분에서 확실히 성공적이었고, 그의 커리어 사상 세번째 세리에 A 최우수 골키퍼상을 수상했었다. 이러한 활약들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국가대표 팀의 주전 골리로 다시 한 번 월드컵에 향했고,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일 월드컵 16강 경기, 일명 '황선홍 프리킥'으로 기억되는 그 장면에서 어마무시한 선방 능력을 뽐냈던 이탈리아의 수문장이 바로 지안루이지 부폰이기 때문이다. 그의 선방 능력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던 명장면이었다. 이탈리아의 행보는 안정환의 골든골로 16강에서 마무리 되었지만, 부폰의 이름은 우리 모두가 기억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시즌인 2002-2003 시즌, 지안루이지 부폰은 무려 47경기에 출전하여 유벤투스의 골대를 지켰다. 그의 활약상은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이어지며 유벤투스의 결승행에 일조했고, 당시 AC 밀란을 상대로 단 한 골도 내주지 않고 정규 시간과 연장전을 모두 버티며 승부차기로 향하기도 했었다. 아쉽게 승부차기에서는 패하여 탈락했음에도, 부폰의 활약만큼은 거짓이 아님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승부차기에서도 두 개나 막아내기도 했었고, 경기에서 있었던 필리포 인자기의 절묘한 헤딩 슛을 막아낸 부분에서 모두의 찬사를 얻어내기도 했었다. 또 4강 2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던 당시, 루이스 피구(2000년 발롱도르 수상자)의 패널티킥을 막아내는 등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실로 대단했었다. 이 시즌 부폰은 다시 한 번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동시에 다시 한 번 리그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또한 당시 유럽 클럽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인 선수에게 수여했던 UEFA 올해의 클럽 선수에도 선정되었고, UEFA 최우수 골키퍼, UEFA 올해의 팀, IFFHS 선정 올해의 골키퍼, 발롱도르 9위 등의 명예를 안고 시즌을 마무리했었다. 이 다음 시즌에는 유벤투스에서 100경기 출장을 달성하기도 했었고, 2004년 펠레가 직접 선정한 FIFA 100에서 125인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후 이탈리아 국가대표 팀으로써 유로 2004에 나서기도 했으나, 이탈리아의 총체적인 부진으로 그리 뛰어난 활약상은 보이지 못한 채로 짐을 싸야 했다. 

 이후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부임한 유벤투스는 부폰이 합류한 후로 세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부폰은 개인통산 다섯번째로 리그 최우수 골키퍼에 선정되었다. 유벤투스는 이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당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리버풀을 만나 패했지만, 부폰은 또 한 번 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활약상을 인정 받았다. 2005년 8월, 부폰은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카카(2007년 발롱도르 수상자)와 충돌하여 어깨가 탈구되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는 11월이 되어서야 겨우 복귀할 수 있었지만, 다시 한 번 부상으로 인해 1월까지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부상에서 돌아온 부폰은 여전한 실력으로 뛰어난 선방쇼를 보여주었고, 다시 한 번 세리에 A 최우수 골키퍼상을 수상했다. 

 

 

# 월드컵 챔피언, 그 이후

 

 

월드컵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는 부폰

 

 

모두가 인정하는 최정상 골키퍼, 하지만..

 

 부폰은 다시 한 번 마르첼로 리피 감독을 만나 주전 골리로 활약하게 되었다. 당시 칼치오폴리 관련으로 조사를 받고 있었기에, 뒤늦게 리피 감독의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부폰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7경기를 치루는 동안 겨우 2실점에 그쳤고, 총 5회의 클린시트를 기록했으며, 453분간 무실점 행진을 달릴 정도로 엄청난 모습을 보여줬다. 또 월드컵에서 기록한 그의 2실점 중 한 골은 미국전에서 나온 크리스티안 차카르도의 자책골이었고, 또 다른 한 골은 결승전에서 나온 지네딘 지단의 패널티킥 골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퍼포먼스가 월드컵 내내 얼마나 위대했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당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결승전은 연장전으로 향했고, 이 대회 골든 볼(월드컵 최우수 선수상) 수상자인 지네딘 지단의 헤딩 슛을 막아내는 등 부폰의 눈 부신 선방 쇼는 계속되었다. 연장전까지 모두 끝난 결과는 1-1. 결국 승부차기로 향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다비드 트레제게의 실축으로 결국 이탈리아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안루이지 부폰은 2006년 독일 월드컵 골든 글러브(야신 상) 수상자였으며, 대회 내내 40개의 세이브를 기록하고 팀 오브 토너먼트에 뽑혔다. 이후 파비오 칸나바로의 뒤를 이어 2006년 발롱도르 2위를 기록했고, 2006년 FIFA 올해의 선수 8위, 2006년 FIFPro 월드 베스트 일레븐, 2006년 UEFA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며 정말 말도 안되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리고 그 최고의 골키퍼가 월드컵이 끝나고 돌아가야할 곳은 세리에 B, 2부 리그였다. '칼치오폴리'라 불리는 사건(깊이 언급하지는 않겠다.)으로 인해 유벤투스는 강등되어 세리에 B 소속으로 시즌을 시작해야만 했고, 부폰은 강등에도 불구하고 팀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부폰은 9월 9일에 있었던 리미니와의 경기를 통해 세리에 B 데뷔전을 치뤘다. 세계 최정상을 바라보았던 최고의 골키퍼가 2부 리그에서 데뷔한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2006-2007 시즌 리그에서만 37경기를 소화하고 유벤투스의 승격에 기여했던 그는 시즌이 끝난 직후 2012년까지 계약을 연장하며 유벤투스의 기둥으로 다시 한 번 발돋움했다. 그리고 2007년 다시 한 번 FIFPro 월드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 IFFHS 선정 올해 최고의 골키퍼로 이름을 올렸다. 지안루이지 부폰의 그 다음 시즌은 유벤투스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했다. 세리에 A로 복귀한 유벤투스는 리그를 3위로 마무리지었는데, 부폰은 출전한 34경기에서 무려 94세이브라는 미친 기록을 세우고 통산 일곱번째 세리에 A 최우수 골키퍼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또 2003년부터 6년 연속으로 발롱도르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진기록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등에 부상을 입은 그는  다음 시즌 9월부터 1월까지 자리를 비워야만 했고, 복귀 후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그의 부상 공백 기간 동안 굉장히 잘해준 알렉산더 마닝거의 활약상 등으로 그가 팀을 떠날 것 같다는 소문도 나돌 정도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었다. 허나 부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2013년까지 구단과 계약 연장을 택했고, 부폰의 확실한 미래와 함께 유벤투스는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09년에는 키에보 베로나를 상대하면서 유벤투스에서의 300번째 경기를 소화하기도 했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 팀으로써도 100번째 경기를 소화했다. 하지만 그 다음 시즌의 유벤투스는 굉장히 실망적인 성적을 가져왔다. 리그는 7위,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탈락, 유로파 리그 16강 탈락, 코파 이탈리아 8강 탈락 등, 유벤투스에게 있어 굉장히 별로인 시즌이었고, 부폰도 마찬가지였다. 부폰은 부상으로 인해 종종 공백 기간이 생겼었고, 이어진 월드컵에서도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입고 아웃되며 이탈리아의 씁쓸한 조별 탈락을 지켜봐야만 했다. 당시 월드컵에서 입었던 부상은 좌골 신경 부상이었고, 이로 인해 2010-2011 시즌의 전반기 전체를 나오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부폰이 자리를 비운 유벤투스는 심각했고, 리그를 7위로 마무리하면서 1990-1991 시즌 이후 처음으로 유럽 대항전 진출 자격을 얻지 못하고 시즌을 끝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유벤투스로 향했다.

 

 

# 다시 정상으로

 

 

안토니오 콘테 감독과 지안루이지 부폰

 

 

재기에 성공하다

 

 2011-2012 시즌, 유벤투스에는 새로운 감독 콘테가 찾아왔고, 지안루이지 부폰에게는 실력이 되돌아왔다. 그는 프란체스코 토티의 패널티킥을 막아내는 인상적인 장면을 포함해서 시즌 내내 미친 선방 쇼를 보여주었다. 그의 선방 쇼는 2011년 12월, 유벤투스 팬들이 선정한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그는 인테르와의 경기를 끝으로 15개의 클린시트를 기록했고, 그의 활약에 힘입은 유벤투스는'칼치오폴리' 후로 첫 타이틀을, 그것도 '무패우승'으로 이뤄내며 다시 최정상 자리를 꿰찼다. 

 시즌이 끝난 후에도 부폰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바로 유로 2012. 파비오 칸나바로의 국가대표 팀 은퇴 후 새로운 대표팀의 주장으로 선출된 지안루이지 부폰은 2011년에 이미 디노 조프의 국가대표 팀 출장 기록을 뛰어넘기까지 했고, 이탈리아 대표팀의 무패 행진을 이끌며 유로 2012로 향했던 것이다. 그는 유로 2012에서 아일랜드와의 조별리그 경기, 잉글랜드와의 8강 경기에서 클린시트를 유지하며 Man Of the Match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상을 보였고, 준결승에서는 독일을 상대로 말도 안되는 선방 쇼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결승에서 만났던 축구 역사상 전례 없는 무적함대 스페인을 만나 무려 4골이나 허용했지만, 그 이전까지 부폰이 보여준 능력은 가히 당대 최고의 골키퍼임이 분명했고, 다시 한 번 팀 오브 토너먼트에 선정되었다. 이후 8월에는 유벤투스의 수페르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또, 9월 20일에 있었던 챔피언스 리그 첼시와의 경기에서 유벤투스 소속으로 400번째 경기를 소화하며, 전설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는 유로와 팀에서의 활약상으로 다시 한 번 발롱도르에 노미네이트되었고, 2012년 UEFA 올해의 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샤흐타르 도네츠크를 상대로 클린시트를 유지하면서 그의 유럽 대항전 100번째 경기를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었고, 첼시를 상대로도 클린시트를 기록하기도 했었다. 이후 12월에는 2012년 들어 12번째 클린시트를 기록하여 당시 유럽 최고 기록으로 남았고, IFFHS 선정 2012년 올해의 골키퍼 2위, IFFHS 선정 21세기 최고의 골키퍼 1위에 이름을 올리며 '최고'라는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얻어낸 골키퍼가 되었다. 이후 1월에는 구단과 계약을 2015년까지 연장했고, 다시 한 번 세리에 A 최우수 골키퍼상을 받으면서 여덟번째 수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부폰은 이 시즌에 리그에서 겨우 19실점만을 허용했고, 유벤투스와 함께 또 한 번 리그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며, 이는 부폰이 주장으로써 들어올린 첫 리그 우승 타이틀이었다. 2013년 8월, 새로운 시즌의 출발 또한 수페르코파 이탈리아 우승으로 시작한 부폰은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찬사를 받았다. 11월 24일에는 리보르노 칼초를 상대로 세리에 500경기 출장을 달성하기도 했고, 12월 6일에는 7회 연속 클린시트와 함께 전 기록인 568분의 기록을 넘어선 640분 간의 무실점 행진을 이어나갔으며, 이후 아탈란타와의 경기에서 골을 허용하기 전까지 745분 무실점 기록을 세워냈다. 부폰은 2013년 노이어에 뒤를 이어 IFFHS 선정 올해의 골키퍼 2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그 해 12월에는 유벤투스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했다. 2014년 3월 16일에는 디노 조프의 476경기 출장 기록과 타이를 이뤘고, 2013-2014 시즌 유벤투스의 3년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이 시즌 유벤투스는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탈락으로 유로파 리그에 참가했고, 4강까지 진출하면서 부폰은 유로파 리그 팀 오브 시즌에 뽑히기도 했었다. 

 그는 당연하게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주장이자 주전 골리로 나섰다. 그는 이미 2013년 9월에 파비오 칸나바로와 같은 기록인 국가대표 136경기 출장을 달성한 상태였고, 그 해 10월 11일에 있었던 덴마크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칸나바로의 기록을 뛰어넘으며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많은 A매치 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또, 부폰은 멕시코의 전설적인 골키퍼 안토니오 카르바할과 독일의 로테어 마테우스가 보유한 월드컵 5회 진출을 이뤄낸 세번째 선수가가 되었다. 하지만, 부폰이 이끄는 아주리 군단의 월드컵은 '죽음의 조'에 속하며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우루과이, 잉글랜드, 코스타리카와 함께 D조에 속했던 이탈리아는 3위로 조별 예선 탈락이라는 또 한 번의 좋지 못한 결과를 얻고 월드컵에서 볼 수 없었다. 

 

 

# 유로 2016과 그 후

 

 월드컵이 끝나고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 하의 유벤투스로 돌아온 부폰은 새로운 감독과 또 다른 시작을 알렸다. 부폰은 지난 시즌의 무실점을 합하여 총 801분의 무실점 행진을 이어나갔다. 10월에는 500번째 경기를 치뤘고, 리그 400번째 경기를 치루기도 했다. 또, 2005년 후부터 10년째 FIFPro 월드 베스트 일레븐 후보에 지명되었고, UEFA 올해의 팀에도 지명되었다. 커리어사상 아홉번째 세리에 A 최우수 골키퍼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IFFHS 선정 2014년 올해의 골키퍼 4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기록은 IFFHS 선정 올해의 골키퍼 탑 5에 15년 연속으로 들어간 말도 안되는 대기록이었다. 2015년 3월에는 가에타노 시레아를 재치고 세리에 A 역사상 두번째로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가 되기도 했고, 이 시즌 최고의 활약상으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행을 견인하기도 했다. 그는 토너먼트에서 총 39개의 세이브와 여섯 번의 클린시트 기록으로 2015년 UEFA 올해의 팀에 이름을 올렸다. 아쉽게도 결승에서는 MSN 라인을 앞세운 바르셀로나에 패하여 그의 오랜 소원이었던 빅 이어를 들어올리지는 못했다. 그 다음 시즌에도 역시 리그 우승 타이틀을 얻었고, 4월 유벤투스의 이달의 선수상, 21개의 클린시트, 2015-2016 시즌 유벤투스 최우수 선수상, 세리에 A 최우수 골키퍼상, 2015 세리에 A 올해의 팀, 2015 IFFHS 선정 올해의 골키퍼 2위 등 또 한 번 그의 커리어를 화려하게 채워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지안피에로 콤비(이탈리아의 또 다른 전설적인 수문장)의 934분 무패 행진 기록을 깨면서 이탈리아의 전무후무한 전설적인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마누엘 노이어와 지안루이지 부폰

 

 

 2015년 9월 6일,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 팀 150경기 출장을 달성한 그는 동시에 62회의 클린시트 기록 또한 세워냈고, 이러한 활약상을 바탕으로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아주리 군단에서 다시 한 번 주장과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하고 유로 2016으로 향했다. 이탈리아의 첫 경기 상대는 벨기에. 지안루이지 부폰은 이 경기를 깔끔한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아주리 군단의 순조로운 출발을 도왔다. 이는 부폰의 열네번째 유로 출전이었고, 말디니와 델 피에로, 카사노를 재치고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많은 출전 기록이었으며, 동시에 델 피에로와 함께 4회의 기록으로 가장 많은 유로 대회를 밟은 선수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이 다음 경기였던 스웨덴 전에서도 클린시트를 유지한 부폰은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는 감기를 이유로 출전하지 않았다. 이후 16강 스페인전에서 복귀한 그는 또 한 번 무실점 승리에 기여하며 대회 세번째 클린시트를 가져갔고, 8강에서 만난 독일과의 경기에서 첫 골을 허용했다. 독일과의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졌고, 당대 최고의 골키퍼들인 마누엘 노이어와 지안루이지 부폰의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이 승부차기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경기는 독일의 승리로 돌아갔으나, 이 경기에서 나왔던 마리오 고메즈의 슈팅을 막아내는 부폰의 선방은 UEFA 선정 올해의 선방 중 하나로 기억되기도 했다. 

 유로가 종료되고 2016-2017 시즌을 맞이한 부폰은 챔피언스 리그 100번째 출장을 달성했고, 2016년 FIFA 선정 최고의 선수들 23인 선정, 세리에 A 600경기 출장, 2016년 10월 유벤투스 이달의 선수상, 커리어사상 아홉번째 UEFA 올해의 팀, 2016년 FIFPro 월드 베스트 일레븐 후보, 유벤투스 소속으로 600번째 경기 출장, IFFHS 선정 2016년 올해의 골키퍼 2위, 세리에 A 최우수 골키퍼상, 세리에 A 올해의 팀, UEFA 주관대회 150경기 출장 등 또 다시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또 다시 빅 이어를 들어올리는데 실패했지만, 그가 이 시즌 최고의 골키퍼이자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고, 2017 발롱도르 4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유벤투스 마지막 시즌. 부폰은 앞선 시즌의 활약상으로 2017 UEFA 올해의 선수 3인에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이름을 올렸고, 2017 FIFA 올해의 골키퍼상, 2017 FIFPro 월드 베스트 일레븐, 2017 세리에 A 최우수 선수상과 최우수 골키퍼상, 2017 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화려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는 유벤투스를 떠나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했고, 그곳에서 개인 통산 챔피언스리그 50회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또 다른 기록을 세워나갔으며, 2018년에는 이탈리아 국가대표 176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도 세워내고 화려하게 국가대표 팀에서 은퇴했다. 

 

 명실상부 모두가 인정하는 현존하는, 이탈리아 역사상, 유벤투스 역사상, 그리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 중 한 명인 지안루이지 부폰.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가 끝이 나고 있는 현 시점까지, 모든 세대가 그를 지켜보았다. 그의 커리어는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았으며, 그가 은퇴하기 전까지 그가 세워나갈 모든 기록들이 축구의 또 다른 역사가 될 것이다. 과연 그의 행보는 어디까지가 될 것이고, 어디까지가 그의 한계가 될 수 있을까.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 '지안루이지 부폰' 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