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 :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
이름 : 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 (František Plánička)
국적 : 체코
출생지 / 생년월일 : 체코(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라하 / 1904년 6월 2일
키 : 172cm
체코슬로바키아의 축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골키퍼로 손꼽히며, 페트르 체흐와 함께 체코 축구사에서 가장 뛰어난 수문장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역사적인 인물. 지안피에로 콤비, 리카르도 사모라와 함께 193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골키퍼이며, 커리어 내내 단 한 장의 경고와 퇴장조차 없는 페어 플레이의 대명사와도 같았던 선수이다. IFFHS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골키퍼 9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클럽에서의 족적
현재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에서 태어난 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는 어린 시절 슬로반 프라하, 유니온, 스타로메슈스키슈 SK 올림피아, SK 부베네치 등에서 축구 경력을 쌓았고, 1923년부터 슬라비아 프라하에서 제대로 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는 프라하에서 15년의 시간을 보냈는데, 이 기간 동안 프라하가 들어올린 리그 트로피만 무려 8개였다. 1925년의 우승 이후, 1928-1929, 1929-1930, 1930-1931, 1932-1933, 1933-1934, 1934-1935, 1936-1937 시즌까지 체코슬로바키아 리그를 정복하다시피 했던 당시 슬라비아 프라하의 중심에는 969경기 중 742승-비공식 기록이 포함된듯 보입니다.-을 이끌었던 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가 있었다. 플라니츠카는 90여년 전인 1920~1930년대라 하더라도, 골키퍼로서는 작은 체구인 172cm의 선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반사신경을 자랑했다고 한다. 덕분에 붙여진 그의 별명은 '프라하의 고양이(The Cat of Prague)'였다. 그가 골문을 지켰던 슬라비아 프라하는 1929년 센트럴 유로피언 컵 결승으로 향하기도 했으며, 1926년의 보헤미아 컵 우승을 시작으로 이 대회에서 무려 6회 우승(1926, 1927, 1928, 1930, 1932, 1935)을 기록했고, 1938년 그의 마지막 커리어에는 마침내 센트럴 유로피언 컵 우승 트로피가 추가되며 막을 내렸다.
#국가대표
1926년부터 1938년 커리어를 끝내기까지 12년의 시간동안 체코슬로바키아의 골문을 지켰던 전설적인 수문장 플라니츠카는 1966년까지 30여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깨지지 않았던 자국 내 국가대표 최다 출장 기록(73경기)을 가지고 있었다.
플라니츠카는 주장으로서 역사상 두 번째 월드컵인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으로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을 이끌었는데, 첫 경기 루마니아전에 이어 8강 스위스전, 4강 독일전까지 모두 승리로 장식 후 결승에서 개최국 이탈리아를 만났다. 1934년 6월 10일, 1930년대를 대표하는 두 골키퍼의 맞대결. 조국의 대표로서, 주장으로서 그라운드에 나섰던 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와 이탈리아의 지안피에로 콤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던 대결. 연장전까지 이어졌던 두 팀 간의 경기는 결국 이탈리아의 역전승으로 마무리되었다.
1938년, 자신의 마지막 커리어인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 골키퍼 자리와 주장 완장을 지켰던 그였는데, 첫 경기인 네덜란드전을 3-0의 깔끔한 무실점 승리로 견인한 후 브라질과 맞붙었다. 1938년 7월 12일, '보르도의 전투(Battle of Bordeaux)'라 불릴 정도로 격렬했던 브라질과의 경기는 체코 슬로바키아 선수 1명, 브라질 선수 2명 퇴장과 여러 선수들의 부상, 심지어는 플라니츠카 본인마저도 브라질의 스트라이커 페라시오와 충돌하며 팔 골절상을 입는 등 총체적인 난국으로 흘러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이 부러진 플라니츠카는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정규 시간 종료까지 골문을 지켰으며, 연장전까지 이어졌던 혈투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가 지킨 체코슬로바키아의 골문은 열리지 않으면서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이후 많은 선수들이 부상에 빠진 채 가진 재경기에 패해 체코슬로바키아와 플라니츠카의 월드컵은 막을 내려야만 했다. 아쉽게도 그가 조국을 위해 뛰었던 마지막 월드컵 무대는 두 경기만에 마무리되었지만, 그는 당시 월드컵을 관람했던 기자들로 하여금 대회 베스트 일레븐 중 골키퍼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그 임팩트가 명확했다.
은퇴 이후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1985년, UNESCO는 커리어 내내 단 한 번의 경고조차 받지 않았던 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를 위해 Honorary Fair Play Award를 시상했다. 1996년, 플라니츠카는 자신의 은퇴 이후 제대로 기세를 이어나가지 못했던, 자신의 대부분을 받친 슬라비아 프라하가 48년만에 마침내 리그 우승을 거머쥐는 모습을 보는 것에 성공했고, 그로부터 두 달 후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 '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 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