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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엄 포레스트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위대한 이유축구 소통/칼럼 2020. 4. 23. 16:13
물론 노팅엄 포레스트가 챔피언스 리그, 이하 유로피언 컵 우승을 차지한게 위대하다 평가 받는 이유는 많습니다.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 아래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로 승격 직후 리그 우승, 연달아 유로피언 컵을 제패했으니 단적인 설명만으로도 그 위대함을 느낄 수 있을겁니다.
그래서 노팅엄 포레스트의 유로피언 컵 우승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당시 상대팀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978-1979 시즌, 노팅엄 포레스트가 유로피언 컵 첫 경기인 32강부터 만나야 했던 상대는 리버풀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이런저런 이유로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 리버풀이지만, 당시 리버풀은 무려 유로피언 컵의 '디펜딩 챔피언'이었어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었던 거죠. 지금으로 친다면 레알 마드리드를 만난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가장 첫 경기부터 말이에요.
그런 리버풀을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 하의 노팅엄 포레스트는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고, 무실점으로 1차전과 2차전을 모두 마무리하며 합계 스코어 2:0으로 다음 토너먼트로 향했습니다. 무려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그 어떠한 실점을 하지 않은 채 16강으로 향한 것입니다.
16강전 상대는 직전 시즌 그리스 리그 우승과 그리스 컵 우승을 동시에 차지하며 더블을 달성했던 AEK 아테네였습니다. 더블 달성 당시 리그에서 74득점으로 압도적인 공격력과 27실점이라는 수비적으로도 안정적인 모습을 갖췄었던 AEK 아테네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AEK 아테네를 노팅엄 포레스트는 정말 손쉽게 무너뜨렸습니다. 1차전 아테네 원정에서도 페널티킥 실점만을 내주고 2대1 승리를 거둔 노팅엄은 아테네를 홈으로 불러들이고 무려 다섯골이나 집어넣으며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총합 스코어는 7대2.
그 다음 8강 상대는 스위스의 전통 강호 클럽인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였습니다. 스위스 슈퍼 리그만 27회, 스위스 컵에서도 19회에 달하는 우승 기록을 보유 중인 그라스호퍼는 직전 시즌에 스위스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라스호퍼는 16강에서 무려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올라온 강팀이었고, 당시 유로피언 컵 득점왕을 차지하는 클라우디오 술세르를 앞세워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했던 팀이었습니다. 당연히 노팅엄 포레스트에겐 어려운 상대였죠.
그런 그라스호퍼를 상대로 노팅엄은 '그게 뭐 어쨌다고?'하는 식으로 1차전에서만 무려 4골을 집어넣고 1, 2차전 합계 5:2의 스코어로 4강까지 향하게 됩니다.
파죽지세로 4강까지 진출했던 노팅엄 포레스트를 기다린 팀은 FC 쾰른. 1977-1978 시즌 분데스리가 챔피언이자, DFB 포칼컵까지 우승하며 더블을 이뤄냈던 당시 독일 최강팀. 노팅엄 포레스트의 상대는 그들이었습니다.
명색만 독일의 최강팀이 아니었죠. 노팅엄은 당시 유로피언 컵에서 가장 어려운 경기를 치뤄야만 했습니다. 늘 홈으로 불러 상대팀을 무너뜨렸던 노팅엄이 무려 3실점이나 허용하며 1차전을 3:3 동점으로 마무리 했었죠.
하지만 결국 웃는건 노팅엄 포레스트였습니다. 쾰른 원정 경기에서 1:0의 값진 승리를 따내며 합계 스코어 4:3으로 겨우 결승으로 향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 상대는 스웨덴의 전통 강호 말뫼 FF였습니다. 1970년대 스웨덴 리그를 장악했던 말뫼는 리그 타이틀만 5개, 스웨덴 컵 타이틀만 4개였을 정도로 당대 스웨덴 최강의 팀임이 분명했습니다.
또한 결승까지 올라오면서 AS 모나코, 디나모 키예프, 비스와 크라쿠프, FK 오스트리아 빈을 차례로 꺾으며 자신들의 강력함을 입증해왔던 팀이었었죠.
그 말뫼를 상대로, 트레버 프란시스의 결승골이 터지며 우승을 확정 지은 노팅엄 포레스트는 구단 역사를 넘어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당시에 만났던 팀들을 하나 하나씩 살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기적과도 같은 우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대 자본의 유입과 여러 변화들이 시도되는 현대 축구에서 과연 이런 족적을 남길 클럽이 또 나타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