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리카르도 사모라 :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
    축구 연재/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 2020. 4. 23. 13:28

     

     

    이름 : 리카르도 사모라
    (
    Ricardo Zamora Martínez)

    국적 : 스페인

    출생지 / 생년월일 : 스페인 바르셀로나 / 1901년 1월 21일

    키 : 186cm

     

     늘 착용했던 모자와 폴라넥 옷차림으로 유명한 스페인 축구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당대 최고의 골키퍼. 'El Divino', 우리말로 신성한 사나이라는 뜻의 이 수식어는 그가 얼마나 위대한 골키퍼였는가를 잘 알려준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는 '사모라 상' 또한 그의 이름에서 따온 상이다. 그는 IFFHS 선정 20세기 스페인 최고의 골키퍼,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골키퍼 5위 등 세계적으로도 인정 받고 있다.

     

     

    # 클럽에서의 족적

     

     

     

     

     1901년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리카르도 사모라는 1916년 에스파뇰과의 계약 전까지 Universitari SC에서 활약했다. 이후 에스파뇰과 열다섯의 나이에 계약한 그는 1918년 카탈루냐 컵 우승 등을 함께 했는데, 이후 에스파뇰의 지역 라이벌 구단인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1919년부터 약 3년 동안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그는 바르셀로나의 전설적인 3년과 함께 했는데, 잉글랜드 출신의 잭 그린웰 감독과 함께 그는 카탈루냐 챔피언쉽 3회,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했으며, 이후 에스파뇰로 돌아오며 자신의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1929년 2월 2일, 에스파뇰의 엠블럼을 가슴에 달고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데뷔전을 가지게 되었던 그는 같은 해에 카탈루냐 챔피언쉽과 코파 델 레이를 모두 우승하는 것에 공헌하며 최고의 골리 자리를 지켰다. 이 당시 에스파뇰의 감독은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했던 잭 그린웰이었고, 그의 은사와도 같은 그린웰과 함께 그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었다. 이후 그가 향했던 곳은 레알 마드리드가 된다. 

     에스파뇰과 함께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그는 이듬해에 바로 레알 마드리드로 향했다. 팀을 옮긴 그는 1931-1932 시즌, 생애 첫 라리가 우승을 경험했고, 1934년과 1936년에는 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의 선수 생활 중 클럽 커리어로는 하이를 찍기도 했다. 

     

     

    # 국가대표

     

     

    지안피에로 콤비(좌)와 리카르도 사모라(중)

     

     

    8개의 손을 가진 거미

     

     그는 일찍이 1920년 열아홉의 나이에 앤트워프 올림픽에 스페인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당시 올림픽은 지금처럼 23세 이하의 선수들로 구성해서 출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인 국가대표 팀으로 대회에 참여했기에 지금과는 확연하게 그 위상이 달랐던 대회였다. 그리고, 그는 고작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이 대회에서 스페인의 골문을 지키는 최고의 골키퍼였으며, 또한 대회를 통틀어 최고의 골리로 인정 받으며 올림픽 은메달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이 대회에서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바르셀로나의 회장으로 하여금 그를 무조건적으로 데려오게끔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후 1934년,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되는 최고의 무대이자, 다른 한 편으로는 최악의 무대였던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다. 이미 33세의 베테랑 골리였던 그는 팀의 주장을 맡아 대회에 참가했고, 16강에서 남미의 강호 브라질을 무찌르고 8강에 이르렀던 그와 스페인은 개최국 이탈리아를 만나게 되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를 대표하는 유럽 최고의 골키퍼, 이탈리아의 지안피에로 콤비와 스페인의 리카르도 사모라가 만났던 역사적인 경기. 이 경기는 콤비와 사모라의 말도 안되는 선방 쇼로 결국 두 팀 다 1실점씩을 기록하며 정규 시간 내에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다만, 이 대회를 주관했던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의 결정에 따라 연장전이 주어지지 않고, 다음날에 부상이 있었던 사모라가 빠진 채 재경기를 가져가며 이탈리아가 4강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와의 8강 경기 만큼은 상대 팀의 지안피에로 콤비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던 사모라였지만, 파시즘의 절대적인 권력 아래 피해를 입으며 아쉽게 짐을 싸 돌아가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당시 언론들은 리카르도 사모라의 말도 안되는 선방 능력에 감탄하며 '리카르도 사모라는 8개의 손을 가진 거미'라고 언급하며 최고의 칭찬들을 아끼지 않았다. 

     

     1936년, 스페인에서 내전이 일어나며 프랑코 장군을 따르는 이들과 반 파시즘의 인민정부의 대결이 시작되자,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니스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했고, 1937년 은퇴를 결정하며 그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최소 실점률을 기록한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상의 이름으로 사용될 정도로 현지에서 굉장히 위대한 평가를 받고 있는 당대 최고의 골키퍼. 제국주의 속에 더럽혀진 축구판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모두에게 인정 받으며 최고의 위치를 유지했던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억될 스페인 축구 역사 속 전설적인 수문장임이 변치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 '리카르도 사모라' 편이었습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