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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피에로 콤비 :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축구 연재/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 2019. 4. 24. 02:00
이름 : 지안피에로 콤비 (Gianpiero Combi)
국적 : 이탈리아
출생지 / 생년월일 : 이탈리아 토리노 / 1902년 11월 20일
키 : 181cm
리카르도 사모라, 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와 함께 193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골키퍼이다. 유벤투스의 전설적인 골키퍼로써, 디노 조프에 이어 IFFHS 선정 20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골키퍼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또한 1934년 FIFA 월드컵 우승의 주역 중 한 명으로도 남아 있다.
# 유벤투스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태어났던 지안피에로 콤비는 토리노에 위치한 명문 축구 클럽 유벤투스에 입단했다. 그는 이후 평생을 유벤투스에서만 활약했다. 아무튼, 당시 유벤투스의 유스 팀에 소속되어 경기를 치루던 콤비의 리그 데뷔 경기는 1922년에 있었다. 그 해 2월 5일, AC 밀란과의 리그 경기에서 데뷔했던 그는 1934년까지 총 5번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특히, 1925-1926 시즌의 유벤투스는 리그에서 겨우 18실점만을 기록하는 어마무시한 수비력을 보여줬는데, 이 중심에는 당연히 지안피에로 콤비가 있었다. 이후 지안피에로 콤비는 유벤투스의 환상적인 1930년대를 이끌었는데, 당시 유벤투스를 이른바 'The Golden Quinquennium'이라 불렀다. 또한 콤비는 당시 비르지니오 로세타, 움베르토 칼리가리스와 함께 유벤투스를 넘어 이탈리아의 환상적인 수비 벽을 형성했었다.
유벤투스에서 보낸 13시즌 동안 리그에서 348경기를 소화했고, 유벤투스가 4연패를 기록했떤 중부 유럽컵에서는 16경기에 출전하는 등 총 합하여 370경기라는 당대 골키퍼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했었다. 이 기록은 1970년대에 들어서 디노 조프(473경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40년이 넘도록 깨지지 않았던 엄청난 기록이었다.
# 이탈리아
지안피에로 콤비의 첫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는 1924년 4월 6일, 부다페스트에서 있었던 헝가리와의 경기였다. 당시 스물 한 살의 나이였던 콤비는 헝가리에게 총 7골을 내주면서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데뷔전을 마치지는 못했다. 이후 1925년 3월 22일, 프랑스와의 경기 이전까지 약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탈리아 국가대표 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이 프랑스와의 경기는 당시 유벤투스의 홈구장에서 열렸고, 콤비는 이 경기를 무실점으로 마무리하며 7-0 승리의 주역 중 한 명으로 남았다. 이 경기 이후 10년간 이탈리아의 골문을 지키는 선수는 지안피에로 콤비였고, 그를 대신해 다른 선수가 골키퍼를 맡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다. 이후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 팀의 일원으로써 참가했는데, 이탈리아는 8강에서 스페인을 만나 1-1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재경기를 가졌고, 재경기에서는 7-1 대승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차지하면서 4강으로 진출했다. 이후 4강에서 우루과이에게 세 골을 내주고 패한 이탈리아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집트를 상대로 무려 11골을 집어넣고 동메달을 차지했고, 지안피에로 콤비 역시 올림픽의 동메달리스트로 남게 되었다. 이외에도 지안피에로 콤비는 이탈리아 국가대표 팀의 일원으로 중부 유럽컵 우승의 주역으로도 남아 있다. 현재의 유럽 국가대항전인 유로 이전에 존재했던 중부 유럽컵에서 총 두 번을 우승했고, 1931년 11월에 있었던 서른 세번째 국가대표 경기에서 주장으로 임명되어 경기를 치뤘다.
그리고, 그가 활약하게 될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이 다가왔다. 당시 지안피에로 콤비의 나이는 31세였고, 그는 축구 선수 생활을 은퇴할 예정이었다. 그는 이미 유벤투스와 함께 다섯 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국가대표로써도 40경기 이상을 소화했었다. 또한 유망한 젊은 골키퍼들이 등장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당시 인테르 소속으로 국가대표 경기를 치룬 적도 있었던 카를로 세레솔리가 콤비의 뒤를 이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국가대표 팀의 비토리오 포조 감독은 콤비에게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은퇴를 미뤄주기를 부탁했고, 월드컵이 시작하기 몇 주 전에 세레솔리 골키퍼가 훈련 도중 부상을 입으면서 콤비가 어쩔 수 없이 주전 골리로 활약해야만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결국 은퇴를 앞두고 있던 지안피에로 콤비는 아주리 군단을 이끌어야만 하는, 그리고 훌륭하게 이끌었던 최고의 골키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우선 첫번째 경기는 5월 27일 로마에서 펼쳐진 미국과의 경기였다. 아주리 군단은 무서운 기세로 미국을 상대하며 7골을 합작해냈고, 이 과정에서 콤비는 단 1실점만을 기록했다. 그리고, 아주리 군단의 지안피에로 콤비는 8강에서 당대를 대표하던 스페인의 전설적인 골키퍼, 리카르도 사모라를 맞딱드렸다. 당시 축구계 최고의 수문장으로 평가 받았던 이 둘의 만남으로, 이 경기는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맞대결은 5월 31일에 펼쳐졌고, 결과는 연장 승부 끝에도 정해지지 않으며 1-1 무승부, 다음 날에 재경기가 펼쳐지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리고 재경기에서 콤비의 활약 하에 아주리 군단은 무실점 승리를 차지하고 준결승으로 향할 수 있었다. 준결승 상대는 당대 최고의 팀 중 하나로 불리며 'Wunderteam'의 수식어를 가졌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는 대회가 있기 4개월 전에 이미 그들에게 4골을 허용하며 처참히 패한 기억이 있었다. 허나, 6월 3일에 있었던 준결승 경기에서 'Wunderteam'이 콤비를 뚫어내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고, 결국 아주리 군단은 또 한 번 무실점 1-0 승리를 거두고 결승까지 향했다. 당시 지안피에로 콤비는 오스트리아의 결정적인 슈팅을 두 차례나 막아내며 팀의 승리에 가장 큰 공헌을 했던 당사자였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 경기는 6월 10일 로마에서 펼쳐진 체코슬로바키아와의 대결. 그리고,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는 앞서 언급한 사모라, 그리고 콤비와 함께 시대를 주름 잡았던 전설적인 골키퍼 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가 있었다. 그렇게 성사된 이 둘의 맞대결은 정규 시간 동안 각각 1실점, 결국 연장으로 이어졌고, 이탈리아의 짜릿한 역전승으로 대회는 마무리되었다. 이 월드컵에서 총 510분 동안 겨우 3실점만을 허용한 지안피에로 콤비는 당시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에게 직접 줄리메 컵을 받으며 자국의 역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만끽했다. 그 다음 해인 1935년, 그는 중부 유럽컵에도 참여를 했으며, 그 대회를 끝으로 완전히 프로 생활을 끝마쳤다.
아주리 군단의 역사상 첫 전성기를 이끌었던 최고의 수문장 지안피에로 콤비. 그는 디노 조프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었던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였고,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1956년 5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 '지안피에로 콤비' 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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