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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국가대표 경기와 최초의 FA컵 결승전에 출전한 골키퍼축구 연재/축구 역사속 여러 골키퍼들 2021. 1. 3. 21:51
1851년, 잉글랜드 런던의 켄싱턴에서 태어났던 레지널드 코트니 웰치(Reginald Courtenay Welch)는 잉글랜드에서 시작된 근대 축구의 핵심적인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가 축구 역사에 남긴 족적은 굉장히 특이한데요. 원더러스 FC 소속이었던 그는 1872년 최초로 열린 잉글랜드 FA 컵 결승전에 골키퍼로 출전했던 선수입니다. 또한 그 해 11월 30일에 있었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축구 역사상 최초의 국가대표 경기에서 잉글랜드 선수로 참여했는데요. 여기서는 하프백 포지션을 소화했습니다. 근대 축구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 받는 두 경기에 다른 포지션으로 출전한 독특한 이력의 선수죠? 이 다음 연도에 있었던 FA컵 결승에서는 수비수로 출전했고, 1874년에 있었던 두 번째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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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의 역사 - 05. 현대축구와 골키퍼 2축구 역사 2020. 11. 28. 18:04
토탈 풋볼의 발전과 함께 또 다른 스위퍼 골키퍼를 만나보았고, 동시에 그 대척점에 있었던 제프 마이어라는 전설적인 인물 역시 만나보았다. 골키퍼의 변화는 지금까지 서술했듯이, 축구 전술사적 변화와 쭉 함께 했는데, 지금부터 써내려 갈 이야기 역시 현대 축구의 근간이 되는 '크루이프즘'과 '사키이즘'이라는 축구 철학으로부터 시작된다. 리누스 미헬스 감독 하에 토탈 풋볼이라는 축구사적 혁명에 앞장섰던 '혁명가' 요한 크루이프는 스스로가 감독이 되어서도 그 축구 철학을 이어나가며 축구사에 또 다른 획을 그었다. 요한 크루이프의 축구 철학인 크루이프즘의 시작은 '경기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볼과 함께 한다면, 거의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라는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이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 제시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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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의 역사 - 04. 현대축구와 골키퍼 1축구 역사 2020. 8. 23. 04:15
1970년대 리누스 미헬스 감독과 요한 크루이프라는 천재 선수가 만들어냈던 '토탈 풋볼'이라는 전술사적 혁명은 세계 축구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술적 혁명 속에서 골키퍼 역시 또 다른 변화를 맞이했다. 물론 앞서 순차적으로 알아봤던 골키퍼의 흐름을 통해 전통적인 틀을 깬 '스위퍼 골키퍼'의 개념이 등장했음을 알 수 있었는데, 토탈 풋볼이 강타했던 1970년대 이후부터는 또 어떤 변화가 찾아왔던 것일까.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 남긴 토탈 풋볼의 색채와 함께 유로피언 컵 3연패를 이끌었던 당시 아약스의 수문장은 하인즈 스튀라는 선수였다. 당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인 제프 마이어와 함께 유로피언 컵 결승에 3회 연속 진출 후 모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하인즈 스튀였으나, 오늘 알아볼 골키퍼는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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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의 역사 - 02. 스위퍼 골키퍼의 뿌리축구 역사 2020. 7. 6. 22:44
1931년, 근대 축구가 현대 축구의 근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골키퍼에 관한 규정은 '패널티 에어리어 내에서 어떠한 목적으로든 핸들링이 가능하지만, 공을 옮기는 과정에서 4발짝의 움직임만을 허용한다'로 정립되었고, 이 규정은 1990년대에 들어서기 이전까지 그 어떤 변화도 없이 골키퍼의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번에 다룬 골키퍼의 '개념'은 위와 같이 정해졌다. 그렇다면,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약 60년의 기간 동안,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정말 조금의 변화도 없이 똑같이 유지되어 왔을까? 우선, 골키퍼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띄는 골키퍼 규정에 대해서는 이미 알아봤으니, 골키퍼와 관련된 또 다른 규정을 알아보자. VAR이 도입된 요즘 공격수들이 기록한 골이 취소가 되는 경우가 빈번해진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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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의 역사 - 01. 골키퍼의 개념은 어떻게 생겼을까?축구 역사 2020. 7. 4. 15:09
축구 역사가 오래된 만큼 축구의 '포지션' 개념 역시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여러 포지션들이 등장했고, 전술의 발전과 함께 그 쓰임새가 달라지며 여러 축구 선수들의 이름과 함께 축구사에 기록되었다. 그런 와중에, 타 포지션들에 비해 변화의 폭이 굉장히 좁고, 그래서인지 그리 변한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지는 포지션이 하나 있다. 바로 '골키퍼'이다. 축구 역사 속 '골키퍼'라는 용어가 가장 먼저 언급된 문서가 있다. 위 사진 속에 보이는 '셰필드 규칙'이 그 주인공. 축구 협회(Football Association)가 설립되는 1863년 이전까지 근대 축구에서 '경기 규칙'은 제대로 정립된 것이 없었다. 최초의 보편적인 축구 규칙인 케임브리지 규칙과 공을 발이 아닌 무릎 아래의 다리로도 찰 수 있다는 해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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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야구 챔피언'이었지만, 축구는 만년 2위였던 골키퍼축구 연재/축구 역사속 여러 골키퍼들 2020. 5. 12. 21:18
1870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잭 로빈슨(Jack Robinson, 1870~1931)은 더비 지역에서 태어나 더비 미들랜드 FC에서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타지역 팀을 거쳐 자신의 고향인 더비로 돌아와 더비 카운티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간 로빈슨은 1895-1896 시즌 더비 카운티의 잉글랜드 풋볼리그 준우승을 함께 했는데요. 축구 종목에서는 준우승에 그쳤던 그와 더비 카운티였지만, 1895년에 열렸던 영국 야구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2년이 지난 1897년에도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후 1898년, 사우스햄튼으로 팀을 옮긴 잭 로빈슨은 1900년과 1902년에 팀과 함께 FA컵 결승에 진출하기도 했는데요. 두 번의 기회를 모두 준우승으로 마무리하면서 더 이상의 팀 우승 트로피는 들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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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패 우승을 기록한 '외과의사' 골키퍼축구 연재/축구 역사속 여러 골키퍼들 2020. 5. 9. 00:00
영국 축구의 역사 속 무패 우승을 이뤄내며 'The Invincibles'의 타이틀을 얻어낸 팀이 두 팀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유명한 아르센 벵거 감독의 2003-2004 시즌 아스날이고, 다른 한 팀은 1888-1889 시즌의 프레스턴 노스 엔드이죠. 1862년 웨일스에서 태어난 로버트 밀스-로버츠(Robert Mills-Roberts, 1862~1935)는 웨일스의 대학 축구 클럽을 포함하여 여러 클럽들에서 선수 생활을 보낸 후 1887년 프레스턴에 합류했는데요. 1889년 프레스턴 노스 엔드는 FA컵에서 단 한 골도 실점하지 않은 채 '무실점' 우승을 이뤄냅니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당시 프레스턴의 골문을 지켰던 로버트 밀스-로버츠의 공이 상당했다고 전해지죠. 밀스-로버츠는 1887년 7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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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높이 뛰기 최고 기록을 보유했던 골키퍼축구 연재/축구 역사속 여러 골키퍼들 2020. 4. 30. 18:51
1892년 잉글랜드 리버풀에서 태어난 벤자민 하워드 베이커(Benjamin Howard Baker, 1892~1987)는 1921년부터 1946년까지 영국의 높이 뛰기 최고 기록 1m 95cm를 가지고 있었던 골키퍼입니다. 1913년 블랙번 로버스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한 베이커는 프레스턴 노스엔드, 리버풀, 코린티안, 에버튼, 첼시, 올드햄 애슬레틱에서 커리어를 보냈던 확실한 축구 선수인데요. 그는 영국 높이 뛰기와 세단 뛰기 영국 기록을 보유 중이던 만능 스포츠맨이었으며, 1912년과 1920년 영국을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한 적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노던 카운티 챔피언쉽에서 높이 뛰기, 110m 허들, 원반 던지기, 노던 올림픽에서는 멀리 뛰기 우승을 차지했던 기록 역시 남아있습니다. 그는 육상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