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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키퍼의 역사 - 05. 현대축구와 골키퍼 2
    축구 역사 2020. 11. 28. 18:04

     토탈 풋볼의 발전과 함께 또 다른 스위퍼 골키퍼를 만나보았고, 동시에 그 대척점에 있었던 제프 마이어라는 전설적인 인물 역시 만나보았다. 골키퍼의 변화는 지금까지 서술했듯이, 축구 전술사적 변화와 쭉 함께 했는데, 지금부터 써내려 갈 이야기 역시 현대 축구의 근간이 되는 '크루이프즘'과 '사키이즘'이라는 축구 철학으로부터 시작된다.

     

     리누스 미헬스 감독 하에 토탈 풋볼이라는 축구사적 혁명에 앞장섰던 '혁명가' 요한 크루이프는 스스로가 감독이 되어서도 그 축구 철학을 이어나가며 축구사에 또 다른 획을 그었다. 요한 크루이프의 축구 철학인 크루이프즘의 시작은 '경기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볼과 함께 한다면, 거의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라는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이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 제시되었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팀의 전체적인 압박을 이용한 볼 리커버리 증가, 그리고 볼 소유를 위한 여러 갈래의 패스 길, 이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데, 크루이프즘의 이러한 전반적인 팀 압박과 볼 소유를 위한 여러 갈래의 패스 길에는 당연하게도 골키퍼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바르셀로나 드림팀의 수문장, 안도니 수비사레타

     요한 크루이프가 '드림 팀'이라고 불리는 1990년대의 바르셀로나를 맡았을 당시 이 크루이프즘 실현을 위해 팀의 주전 골키퍼였던 안도니 수비사레타에게 요구했던 플레이는 앞서 우리가 살펴왔던 '스위퍼 골키퍼'의 움직임이었다. 서술했듯 크루이프즘의 실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는 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전체적인 압박인데, 여기서 크루이프가 강조한 것이 바로 상대 팀보다 수적 우위를 가지는 것이었다. 크루이프는 이 '수적 우위'를 목적으로 골키퍼인 수비사레타에게 백쓰리 라인에 추가되어 수비 범위를 커버하게끔 했다. 가장 처음 수비사레타가 크루이프로부터 이러한 주문을 받고는 "그러다가 골을 먹히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을 했고, 크루이프의 대답은 "그러면 골을 먹히면 된다"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크루이프는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 철학의 이행을 굉장히 강조했으며, 이러한 결과물로 수비사레타는 스위퍼 골키퍼의 움직임을 취하는 또 다른 골키퍼로 남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크루이프의 축구 철학 아래 스위퍼 골키퍼의 움직임을 요구 받았던 수비사레타가 그 움직임을 능숙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부분이 아닐까. 수비사레타의 볼 다루는 능력은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스위퍼 골키퍼들처럼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에 부임하기 이전에도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앞서 다루었던 스위퍼 골키퍼들의 화려한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뛰어난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골키퍼 스타일을 보여준 수비사레타에게 크루이프즘이라는 축구 철학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색이었다. 그렇다면, 이 크루이프즘의 색채와 함께 스위퍼 골키퍼의 움직임을 보다 더 자연스럽게 구사했던 골키퍼는 아예 없었던 걸까?

     

    에드윈 반 데 사르와 루이 반 할 감독

     요한 크루이프의 크루이프즘에 영향을 받은 초기의 인물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한다면, 네덜란드의 루이 반 할 감독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요한 크루이프가 감독으로서 자신의 색채를 진하게 남기고 떠난 아약스에서 루이 반 할은 코치 생활을 거쳐 1991년, 아약스의 정식 감독이 되었고, 크루이프의 축구 철학을 따라 상당히 공격적이고 매력적인 축구를 펼쳤다. 

     

     반 할은 자신의 철학에 따라 축구를 네 가지 국면으로 바라보았다. '공격 조직', '공격 전환', '수비 조직', '수비 전환'. 여기서 반 할이 골키퍼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그가 바라본 '공격 전환'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반 할은 이 공격 전환의 형식 역시 네 단계로 나누었는데, 순서대로 나열하면 '건설', '공의 이동과 순환', '기회 창출과 수비 파괴', '마무리' 순이다. 크루이프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볼 소유를 위한 여러 가지의 패스 길을 루이 반 할 감독의 방식으로 바라본 것이 '건설', '공의 이동과 순환'의 단계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 이 과정에서 반 할 감독이 강조한 것은 최후방에 위치한 골키퍼의 역할이었다. 반 할 감독은 최후방의 골키퍼를 또 한 명의 플레이메이커로 인식했으며, 건설 단계의 중심, 넓게는 공격 전환이라는 국면을 시작하는 역할로 생각했다. 

     

     루이 반 할의 이러한 축구 철학은 축구 규칙의 변화와 맞물려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스위퍼 골키퍼의 모양새를 갖추게끔 만들었다. 반 할이 아약스에서 감독 일을 시작한지 1년째인 1992년, 골키퍼는 더 이상 백 패스로 온 공을 손으로 잡을 수 없게 되었고, 동시에 골키퍼 본인이 본인 의지로 내려놓은 공을 다시 손으로 잡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러한 결과는 반 할 감독이 '공격 전환'의 시발점으로 바라본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오직 발만을 이용해서 그 역할을 다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거듭된 훈련을 거쳐 만들어진 괴물 같은 골키퍼가 바로 에드윈 반 데 사르다. 

     

     우리에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 선수와 함께 뛰던 모습으로 더 익숙한 반 데 사르는 아약스 시절 반 할 감독의 지도 아래 현재의 스위퍼 골키퍼 모습과 가장 흡사한 플레이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는 공격 전환의 국면에서 빠른 판단 능력과 뛰어난 패스 능력을 모두 발휘하여 반 할 축구의 가장 핵심적인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으며, 추후 스위퍼 골키퍼의 대명사가 되는 마누엘 노이어에게 많은 영감을 안겼다. 

     

     크루이프즘과 그 연상 선상 아래에서 골키퍼에게 요구되었던 움직임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 움직임을 구현해낸 선수가 누구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제 현대 축구의 또 다른 근간, '사키이즘'과 사키이즘 아래에서 등장한 또 다른 골키퍼를 알아보자.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수문장, 지안루이지 부폰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토탈 풋볼에 매료된 아리고 사키는 요한 크루이프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이를 발전시켰다.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크루이프가 볼 점유라는 타이틀에 조금 더 집중했을 때, 아리고 사키 감독은 '효율적인 압박'이라는 타이틀에 주목했다. 1980년대까지 존재했던 '리베로 시스템'을 갈아엎고, 효율적인 압박과 공간 활용을 위한 포메이션으로 4-4-2를 꺼내든 사키 감독은 콤팩트한 라인 형성으로 미헬스 감독의 토탈 풋볼을 보다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 당시 아리고 사키 감독이 제시한 이러한 '콤팩트 풋볼'은 이탈리아 무대뿐만 아니라 당대의 여러 감독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당시 아리고 사키 감독 밑에서 지도를 받았던 한 선수는 사키이즘의 연장 선상으로서 감독 생활을 시작한다. 이 인물이 바로 카를로 안첼로티.

     

     안첼로티 감독은 아리고 사키 감독 밑에서 플랫형 4-4-2 포메이션의 중앙을 책임졌던, 이 사키이즘의 개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는 감독 일을 시작한 이후로 쭉 이 사키이즘의 연장 선상으로서 존재했다. 안첼로티는 물론이고 당대의 여러 감독들이 보여준 콤팩트 풋볼은 최전방인 1선부터 차례로 2선, 3선까지 모든 선수들의 일정한 간격 유지와 압박에 힘을 써야 했다. 이러한 방식의 축구는 수비 상황에서 거의 완벽에 가깝게 공간을 활용했으며, 효율적인 압박으로 볼 리커버리에 있어 상당히 뛰어났다. 다만, 이 치밀하게 계획된 축구는 앞서 이야기한 크루이프즘과는 달리 '창의성'이 다소 결여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여러 갈래의 패스 길을 찾아놓고 중원에 위치한 상당히 뛰어난 플레이메이커의 활용으로 볼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굉장한 효율성을 발휘했던 크루이프즘과 이 크루이프즘에 영향을 받은 시스템들과는 달리, 사키이즘과 사키이즘에 영향을 받은 콤팩트 풋볼은 이러한 부분에서 결점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사키이즘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플랫형 4-4-2 포메이션에서 모든 선수들이 정교한 간격 유지와 압박을 행하고 있다면, 이는 완벽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역습 상황에서 볼을 빼앗길 경우, 혹은 수비 상황에서 간격 유지와 라인 설정에 실수가 발생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텅텅 비어버린 뒷공간을 노출하면서 상대 팀에게 상당히 유리한 찬스를 내준다는 치명적인 단점 역시 존재했다. 이러한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안첼로티 감독이 이용했던 선수가 바로 또 한 명의 수비수 역할을 책임졌던, 지안루이지 부폰이다.

     

     물론 이러한 콤팩트 풋볼에서 부폰이 뒷공간을 커버하고 심지어는 '결여된 창의성'에서 플레이메이킹까지 관여하며 창의성을 더한 플레이들은 순전히 '지안루이지 부폰'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플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역대 최고 수준의 골키퍼이며, 데뷔 초반의 부폰은 광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상당한 공격성과 천재성을 자랑했던 수문장이었다. 그는 1990년대에 들어서 앞서 서술한 골키퍼 규칙의 변화와 함께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스위퍼 골키퍼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 인물들 중 한 명이었다. 2010년대를 전후로 펩 과르디올라가 제시한 극강의 점유율 축구와 이후 이어진 여러 전술적 발전으로 스위퍼 골키퍼의 필요성이 부각되어진 시점의 부폰은 안타깝게도 부상과 함께 더 이상 공격성을 강조하는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가 에드윈 반 데 사르와 함께 1990년대에 나타났던 스위퍼 골키퍼였다는 부분이고, 그가 행했던 플레이들은 당시 소속팀인 파르마와 이후의 유벤투스가 행한 콤팩트 풋볼의 '마지막 퍼즐'과도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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